[재하시경] 바보남매 2. 04. The King


 
난 오빠들 동생이라서 참 좋았어. 
답답한 큰 오빠, 개싸가지 작은 오빠.
그래도 우리들 사이는 참 좋았잖아.

근데, 큰 오빠.
나 작은 오빠가 점점 미워지려고 해.
어떡하지, 나?

 




[재하시경] 바보남매
Written 하얀담비

 


화분, 감사합니다.


 

중례를 서기 위해 내실에 들른 시경은 쑥쓰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난 줄 어떻게 알았어요?

온실에 있던 거니까요. 공주님이실 것 같았어요. 다들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외로 눈치가 있었네. 서랍 안의 쪽지에 놀라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집무실을 빠져 나온 재신은 시경을 보면 입을 삐쭉였다. 정말 기쁜 듯 배시시 웃는 게 참 잘난 얼굴이다. 그래. 그러니 이 천하의 이재신도 넘어간 거지.


 

고마우면 나랑 시간 좀 때워요.

아-. 오후에 전하의 만찬 호위를 가야-.

지금은 내 전담이잖아요. 부관 보내요. 전화해 줘요?

아닙니다.


 

커다란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정말 곤란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결정한 듯 허리를 바로 세운다. 어쩜. 정말 비현실적인 캐릭터야, 은시경은.


 

이야기 좀 해봐요.

예?

카운셀러가, 무슨 말이든 하다 보면 저절로 기억이 날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뭐든 말해 봐요. 나도 맞장구 치게. 음-. 뭐가 좋을까? 아. 그래. 은시경씨 연애담. 한번 해 줘봐요.

아, 그게

설마. 한 번도 없다거나, 기억이 안난다거나, 초등학생 마니또 같은 이야기거나, 드라마에 나올 거 같은 오글오글한 거거나. 그런 걸로 대충 때울 생각은 말아요?


 

제멋대로인 공주의 제안에 시경은 어지간히 곤란한 듯 눈을 깜빡였다. 좌우 상하 그리고 깜박깜박. 곤란할 때의 시경의 반응은 한결 같다. 눈으로 말해요야 뭐야.


 

아 빨리요-. 도통 말할 생각을 않는 시경을 재촉하는 재신에 못 이기는 듯 시경이 침을 꿀떡 삼키고 입을 열었다.


 

그게-.  딱히

에이. 뺀다. 자꾸 이러면 내 치료에 관심 없는 걸로 알고 나 병원 안 가요.

공주님.

그럼 내 물음에 답하기. 이건 괜찮죠? 뭐가 좋을까? 아. 그래. 지금 연애 해요? 그래서 그렇게 목석인 건가?"


 

고백 받은 공주에게서 이런 직접적인 질문을 듣다니. 시경은 시경대로 죽을 지경이다. 가뜩이나 적절한 대답거리를 못 찾아서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벗어나나, 누군가 궁인이 들어와 이 상황을 깨 주거나 화제를 바꿔주지 않을까 하는데, 평소에는 그 많던 궁의 사람들이 쥐새끼 한마디로 얼씬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지금은 아닙니다.

“뭐야, 있었구나... 그럼 두 번째! 헤어진 지 얼마나 됐어요? 일주일? 한 달? 일 년?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던가. 그렁그렁. 순간 재신은 자신이 실수 했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뽀얀 얼굴이 슬쩍 붉어 지더니 커다란 눈이 금방이라도 물을 떨어뜨릴 듯 그렁그렁해 진다. 본인도 그걸 아는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깜박 대는 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눈에 보인다. 

이런. 아킬레스 건이었어! 나 어떻게 해. 아유, 바보 이재신!

 


그, 두 달, 됐습니다.



목이 메인 목소리. 그런 주제에 군인이라고 명령대로 대답하는 걸 보면 참 머리가 굳었다. 


"이런 이야기는, 요구하지 말아 주십시오."


앵무새를 주던 날의 그 목소리다. 재신은 겉만 강한 이 남자를 어떻게 위로 해야 할 지 몰랐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인지, 얼만큼 아픈 사랑을 했는지 묻고 싶은데. 그래야 내가 그 틈을 비집든 덮어버리든 하지. 그런데 이 남자는 그 틈조차 주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랑을 하셨기에 이리도 유세인지. 


시경은 꾸벅 경례를 하고는 방을 나가버렸다. 텅 빈 내실에서 재신은 시경이 나간 자리만 쳐다보았다.


 

 




*

 




 
시경은 하루 종일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왕제 시절부터 재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던 그가 정보 열람 카드 번호를 잊어 버렸다던가, 궁에서 길을 잃어 버렸다던가 하는 것은 궁인들 사이에서 작은 소동이 되었다. 워낙에 대단한 스펙을 가진 재하의 곁에 있어서 그렇지, 육사 출신에 사법고시 1차까지 패스한 젊은 근위대 중대장은 꽤나 매력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의 작은 행동에도 여자 궁인들은 술렁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설명이 긴 이유는, 오늘 하루 넋을 빼고 유례 없는 바보 상태가 된 시경을 보다 못한 재하가 퇴근 전의 시경을 집무실로 불렀기 때문이다. 재하가 보기에도 오늘의 시경은 어딘가 나사가 빠졌다. 묻는 말에 재치는 없어도 재깍재깍 대답하던 답답이가 정말 '답답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하루 종일 은시경답지 않았을까."
"...제가요?"


커다란 눈을 굴리는 모습에 재하는 피식 웃었다. 어째 넌 변하질 않냐. 벌써 일 년이다, 일 년.


"대답도 안하고, 찾아 보면 딴 데 가 있고. 오늘 동하가 뭐래는지 아냐? 내가 너 주는 술에 약 탔냔다."


'중대장님 술에 장난 치신 거 아닌가 말입니다.' 응큼하게 눈을 흘기며 재하에게 장난을 걸었을 간 큰 염동하가 떠올라 시경은 웃었다.


"정말 아무 일 없습니다. 요 며칠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봅니다."
"하긴. 너가 나 따라 다닌다고 고생 하긴 했지. 참. 요즘도 재신이 병원 데려다 주는 거 니가 하지? 혹시 은시경 도플갱어 있는 거 아냐? 쉬엄쉬엄 해. 너 요새 살 너무 많이 빠졌어."
"신경 쓰겠습니다."


저렇게 딱딱하다, 저 남자는.

재하는 혀를 끌끌 찼다. 잘해 주고 싶은데, 나오는 말마다 저렇게 받아치니, 더 접근하기도 힘들다. 계기를 만든 건 자신이고, 그걸 받아 들인 게 시경이기는 하지만, 저렇게까지 선을 그어버리니 씁쓸하긴 하다. 그래도 시경을 빨리 내보내는 건 아쉬운 듯 이야기 거리를 찾으려고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야기라도, 그냥 같은 공간에라도 있고 싶은 심정을, 저 답답이는 알기나 할까. 이 이재하가 이렇게까지 절절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거.

















너무 많은 고민을 했는지 재신은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럴 땐 직접 물어 보는 게 제일 낫다. 그런데 뭐라고 하지? 작은 오빠, 너 은시경한테 반지 준 적 있니? 완전 집착 쩌는 쪽지도 넣어서? 은시경 서랍 뒤지다가 그걸 발견했는데, 나 완전 고민하다가 오빠 하고 결판내려고 왔거든? 이거 진짜 오빠가 준 거면 왕실형제간의 피비린내 나는 암투를 각오 해야 할 거야.

혼자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재하의 집무실에 다다른 재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물어 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니면 어쩔 건데. 아니면 정말 맞다고 해도 어쩔 건데. 헤어졌다면, 오빠는 정리했다는 건데. 항아 언니도 있는데. 그럼 은시경 혼자 앓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잖아. 내가 들어갈 자리가 더 좁아진다는 거잖아. 이재신, 너 진짜 바보 같아 졌구나.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무실 문 앞에서 생각을 고쳐먹은 재신은 휠체어 방향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어두운 복도를 울리는 나직한 재하의 목소리에 스틱을 조정하려던 손을 멈췄다.


"재신이는 어때? 너 재신이도 꼬셨잖아. 요즘은 뭐래?"

 


은시경연애상대의 가장 강력한 용의자, 이재하. 저 병신같은 오빠는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고쳐먹은 결심을 참 무디게도 하는 구나, 하며 재신은 집무실의 문에 귀를 기울였다. 왕실 건축가 다시 불러야겠다. 방음이 전혀 안 되서 다 들리잖아. 그의 집무실에 귀를 대어 소리를 들으려고 애쓰는데, 대답이 없다. 재하가 재신의 상태를 물어볼 대상은 한 명 뿐이다. 최근에 재신의 모든 호위는 시경이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별 말씀 없으세요."

"에이-. 그게 아닌데? WOC도 포기하고 제주도에 같이 갔는데, 둘이서 아무 일 없었어?"

"없었습니다."

"시경아. 너, 부마 안 할래?"


 

재신은 숨을 죽였다. 재하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시경이 어떤 답을 할까. 듣고 싶기도 하고, 듣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집무실 안의 두 사람은 침묵했다. 이 땁땁이들. 둘이서 눈싸움 하는 거야? 오빠 넌 왜 쓸데 없는 이야길 꺼내선-!

 


"휴
. 그래. 대답 하지마. 너 대답하면 내가 많이 슬플 거 같아."

"…"

"시경아."

"네, 전하."

"…아냐. 나가봐. 너 진짜 피곤해 보여."

"그럼 쉬십시오. 저번처럼 밤을 새서 자료를 읽어 보시는 건 건강에 해로우니-."

"응. 그래. 은시경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조금의 침묵이 흐르고 가벼운 구두소리가 울렸다. 재신은 화들짝 놀라며 전속력으로 휠체어를 움직여 숨었다. 뭔가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은 기분. 평소와 같지 않았던 재하와 시경에 재신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은시경. 반지. 쪽지. 종이접기. 그리고 '은시경'이라고 부르는 이재하.




큰 오빠. 오빤 알고 있었어?

혹시, 혹시라도 내 짐작이 맞다면, 난 진짜 오빠들을 미워할 것 같아. 어쩌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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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건 디게디게 많은데, 참...
존잘님들도 뜸해 지니 자급자족이다.
아직 이번주 방송분을 못 봤는데... 어떤 분이 캡쳐 뜨신걸 보니 나도 모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어..ㅋㅋ
저, 정말 시갱씌가 공항으로 도주함?? 그거 잡으러 전하 출동함?? 정말 24시간 감시함??
덴당. 스토리가 산으로 가더니 이제는 그냥 팬심만 채워주는 스토리 전개인 거야?
빨리 이번 주꺼 보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가 좀 바쁘네ㅠ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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